귀축의 집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조되는 죽음의 무도.
『귀축의 집』은 독특한 경력을 지닌 미키 아키코의 압도적인 본격 미스터리다. 여기서 ‘귀축(鬼畜)’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귀축의 사전적 의미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귀축의 집』은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암시한다. 도대체 ‘귀축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줄거리를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문 항구에서 엄마와 아들이 탑승한 자동차가 바다에 빠진다. 끝내 두 사람의 시신은 발견할 수 없었고 은둔형 외톨이로 오랫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던 막내딸만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지게 된다. 막내딸 유키나는 사립 탐정 사카키바라에게 사망보험금을 받기 위한 협상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우리 집 귀축은 엄마였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사카키바라는 유키나의 의뢰를 수락하고 사고와 관련된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건 관계자들도 인터뷰하게 된다. 그러다 점점 가족과 집이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숨 막히는 참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끔찍한 참상의 이면에는 더욱 놀랄 만한 진상이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귀축의 집』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치밀하고 촘촘하게 쌓아 올린다. 차례차례 등장하는 관계자들의 증언과 그 속에 숨겨진 모순과 진실을 좇다 보면 마지막에는 경악스러운 반전과 정성스럽게 쌓아 둔 복선이 회수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어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이야미스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이야미스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야미스의 요소가 살짝 가미된 본격 미스터리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각종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세우는 미스터리가 우후죽순으로 세상에 나오는 상황에서 ‘고전’과 ‘클래식’으로 승부하는 미키 아키코만의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이 작품의 매력이 있다.
혀를 내두르는 강렬한 트릭. 충격적인 이야기로 독자를
속이는 추리의 정밀기계.
‘추리의 정밀기계’ 미키 아키코는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1973년부터 줄곧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7년 60세를 기점으로 은퇴 후 평소 즐겨 읽던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해 마침내 전격 데뷔했다. 긴 시간 동안 미스터리 작가가 자신의 본업이 아니었음에도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받는 치열한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2021년 현재까지 열두 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한 것은 가히 주목할 만하다.
데뷔작인 『귀축의 집』은 2010년 제3회 ‘바라노마치 후쿠야마 미스터리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신본격 미스터리의 아버지’ 시마다 소지는 심사평에서 “도저히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 볼 수 없다. 희귀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추리의 정밀기계가 쓴 것 같은 작품”이라며 극찬한 바 있다. 이처럼 미키 아키코는 미스터리의 세부 장르 안에서도 정교한 트릭과 치밀한 논리를 중시하는 이른바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애정이 유독 남다른 작가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동서양의 추리 소설을 섭렵한 열렬한 애독자였고 여가 시간에는 꼭 소설에 나오는 트릭 풀이를 게임처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 관’은 잡지 인터뷰에 실린 한마디로도 알 수 있다.
“매일 뉴스를 보다 보면 현실 그 자체가 사회파 미스터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소설 안에서만이라도 현실과 분리되어 즐겨야 하지 않을까. 살벌한 현실을 잊게 해줄 도피처가 바로 본격 미스터리다.”
위 인터뷰는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작가의 집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소설을 현실과 분리된 공간, 처참한 현실을 망각하게 해주는 공간으로 보며 그러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작가의 신념인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데뷔 후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본격 미스터리 외에는 쓸 생각이 없다”라고 단호히 선언한 바 있다. 작가의 횡보를 보면 이러한 선언은 아직까지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작가가 자신의 미스터리관을 굳건히 지켜나가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멋진 본격 미스터리를 선보여주기도 기대한다.